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슈타이어 암즈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2~13세기 경 슈티리안 오타카르 두크스(Styrian Otakar dukes)와 바벤베르크 가문 후계자가 에르츠베르크 마인 옆의 철길옆에서 대장간을 만든게 시초이다. [[1287년]]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공작 알베르트가 슈타이어에 칼을 만들게 하면서 무기 제조가 시작되었다. 1864년 요제프 베른들(Josef Werndl)가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업이였던 총기 제조업을 물려받았고 이를 기업화 한 것이 슈타이어 암즈의 시초이며, 당시에는 '''요제프와 프란츠 베른들의 기업(Josef und Franz Werndl & Comp)'''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. 당시 슈타이어는 이 기업의 총기 제조 전문 부속업체였었다. 1890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기존의 총기들만 찍어내는 회사였지만 1890년도 이후부터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총기 제작자 [[페르디난트 만리허]](Ferdinand Mannlicher)와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총기 개발도 시작하였고 회사명도 슈타이어 만리허로 변경한다.[* 지금도 공식적인 사명은 슈타이어 만리허 유한책임회사(Steyr Mannlicher GmbH)이고 독일어 위키백과에도 이 명칭으로 등재되어 있다.] 이 [[만리허 소총]]은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군]]의 제식 소총으로 수백만 정이 생산되었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 때는 회사가 엄청 성장하여 하루에 약 4천 자루의 소총을 생산하였고 근무하는 직원만 15,000명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있었다.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종료 후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무기 생산이 거의 전면 금지되었고, 늘어난 인력과 회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였으며, 그래도 슈타이어는 독립하여 살아남았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에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게 강제 합병을 당함으로서 슈타이어도 독일군이 사용할 군용 총기들을 생산하는 회사가 되었다. 하지만 이 시기는 슈타이어의 굴욕의 시기라기 보다는, 오히려 슈타이어가 독일의 우수한 기술력을 흡수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.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슈타이어는 그동안 긁어모은 기술들과 오랜 노하우를 종합하여 명작을 만들게 되는데, 이것이 바로 [[슈타이어 AUG|AUG]] [[불펍]] 소총이다. 또 같은 시기에 개발해낸 [[슈타이어 스카웃|스카웃 저격 소총]]의 히트로 이후 슈타이어는 총기 명가로 확실한 위치를 다지게 되었다. 미 육군의 [[ACR]] 계획에 참가해서 미래적인 소총을 제시하기도 했다. 그러나 ACR 사업이 예산 등의 문제로 취소되어 버리고, 뒤이어서 제작한 [[IWS-2000]]의 처참한 실패가 악재가 되어 결국 21세기 초에 회사 자체가 도산해버리고, 이로 인해 [[슈타이어 AUG|AUG]]의 설계도를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는 등 예전만큼의 명성은 사실상 잃어버린 비운의 회사이기도 하다. 군경용뿐만이 아니라 경기용 총기를 만드는 자회사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